독립서점

포항 호미곶·경주 읍천 해맞이 + 독립서점 여행기

mystory00610 2025. 8. 12. 19:00

바다에서 맞는 새벽, 해가 첫선을 긋는 순간은 늘 새롭다. 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스칠 때 숨을 들이마시면 소금기 섞인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고, 그 공기는 하루를 새롭게 여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포항 호미곶과 경주 읍천은 동해안에서 그런 ‘의식’을 경험하기 좋은 두 장소다. 해맞이를 보고 난 뒤의 시간은 보통 분주해지기 쉬운데, 나는 그 여운을 조금 더 오래 붙잡기 위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조용한 독립서점들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넘기면 새벽의 여운이 서서히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아래 글은 실제로 해맞이를 보고 책방을 한두 군데씩 들러 하루를 채우는, 구체적이고 따라 하기 쉬운 ‘1박 2일 코스’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글에 담긴 모든 풍경과 조언은 ‘현장에서 느낀 것처럼’ 생생히 전달하려 노력했다. 카메라나 노트, 따뜻한 겉옷을 챙겨 떠나보자.

PART 1 — 새벽의 장면: 호미곶에서 맞이하는 첫 해

새벽 4시 반, 도시의 불빛은 흐릿하고 도로 위에는 어둠과 가로등의 잔영만 남아 있다. 호미곶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한적하지만, 명절·연말·특정 이벤트일에는 교통이 몰리므로 미리 도착하는 것이 안전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면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손이 시리면 포켓 속의 소형 손난로나 뜨거운 음료 한 잔이 큰 위안이 된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은 해맞이의 중심이다. 바다 위에 세워진 손과 육지의 손이 서로 마주보는 구성은 해가 그 사이로 떠오를 때 강렬한 심상을 만들어낸다.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지켜보는 동안, 주변의 모든 소음이 잠시 멈추고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리기도 한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삼각대를 펼쳐놓고 연사(continuous shooting)로 태양의 선이 수면을 가르는 순간을 담아보자. 동해의 일출은 빛의 변화가 빠르니,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상황에 맞게 재빨리 조절하는 것이 요령이다.

일출을 본 뒤에는 근처 노점에서 파는 따뜻한 어묵이나 국물이 생각보다 큰 만족을 준다. 새벽의 찬 공기를 깨우는 따끈한 국물 한 모금은 여행의 첫 번째 ‘보상’이다. 냄비에서 끓는 김과 함께 퍼지는 어묵 냄새는, 사진으로 남기기보다 먼저 몸으로 기록해둘 가치가 있다.

PART 2 — 파도책방: 해맞이 후의 잔잔한 시간

해맞이 뒤, 바다 소리를 따라 10~20분 차를 몰면 도착하는 ‘파도책방’은 외형부터 바람과 파도에 설계된 듯한 공간이다. 오래된 어촌의 창고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구조라 천장은 높은 편이고, 원목 서가와 낮은 조명이 아늑함을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창밖의 뷰가 중요하다.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파도는 책의 배경음악이고, 햇빛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와 책장 위에 부드러운 빛무늬를 만든다.

책방의 큐레이션은 명확하다. 해양 문학·수필·항해 기록·해안 생태와 관련된 사진집까지 ‘바다를 매개로 한 책들’이 균형 있게 섞여 있다. 지역 작가의 서적과 작은 독립출판물도 별도의 코너를 차지하고 있어, 현지의 목소리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 매장의 한편에는 ‘오늘의 바다’란 칠판이 있어 주인이 전날의 파도 상태나 새벽에 느낀 기분을 짧은 문장으로 적어놓는다. 나는 그 문장을 먼저 읽고, 그 문장에 어울리는 책을 골라 창가에 앉아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메뉴는 소박하지만 알차다. 바다에서 영감을 받은 스페셜티 라떼나, 지역에서 공수한 재료를 활용한 허브티가 추천 음료다. 북카페이기 때문에 음료를 들고 책을 읽는 데 전혀 부담이 없다. 책방 운영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이 공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책들이 설득력 있게 사람을 바다로 이끄는지 듣게 된다. 그런 대화 자체가 여행의 다른 축이 된다.

맑은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PART 3 — 읍천의 풍경: 벽화와 항구의 리듬

포항에서 경주 읍천으로 이동하면 해안선의 풍경은 조금 더 아기자기해진다. 읍천항은 오래된 어촌 마을의 정서가 남아 있는 곳으로, 골목마다 어촌의 역사와 일상을 그린 벽화가 자리잡고 있다.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어부의 손때 묻은 도구, 항구의 작은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마을의 시간을 응시하게 한다.

이곳의 해맞이는 호미곶의 대규모 퍼포먼스와는 달리 개인적이고 조용하다. 등대와 방파제, 어선이 어우러진 배경 앞에서 맞는 해는 여행자에게 사적인 서사를 부여한다. 새벽의 호미곶에서 받은 충만함을 읍천의 해안 골목에서 차분히 정리해도 좋다.

PART 4 — 해변책방 오리진: 항구 옆, 이야기의 집

읍천항 골목을 걷다 보면 커피 향과 종이 냄새가 섞여 나오는 2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해변책방 오리진’이다. 1층은 카페로 운영되어 간단한 브런치와 음료를 제공하고, 2층은 조용한 서가와 좌석이 있어 한두 시간의 고요한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오리진의 서가 구성은 조금 더 실용적이다. 항구와 연결된 인문·지역사 관련 서적, 여행 가이드, 어촌 문화에 대한 소책자, 그리고 독립출판물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특히 주인장이 현지 어르신들과 직접 인터뷰해 만든 ‘항구 이야기’ 소책자는 이곳만의 자랑거리다.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이 소책자는 여행자가 마을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방에서는 종종 ‘해질녘 독서회’나 ‘마을 기록 워크숍’ 같은 소규모 행사가 열린다. 참여자들은 해가 지는 시간에 모여 자신이 사랑하는 문장을 낭독하거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작은 전시를 구성한다. 일정이 맞으면 이런 현장형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단, 이벤트 일정은 수시로 바뀔 수 있으니 사전 확인은 필수다.

PART 5 — 밖으로 나와 걷는 시간: 골목·포구·갯벌 산책

책을 덮은 뒤에는 읍천의 골목을 걸어 보자. 방파제 끝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거나, 어시장에서 갓 잡은 해산물을 구경하는 일도 여행의 일부가 된다. 포구 근처의 노점들은 신선한 해산물로 가득하고,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메뉴가 많다. 특히 멍게, 성게, 해물 파전 등은 이 바다의 맛을 확실하게 전해준다.

갯벌을 관찰할 때는 신발이 젖을 수 있으니 미리 대비가 필요하다. 물때(조석) 시간을 확인하고, 안전한 구간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갯벌의 생태는 책 속의 설명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직접적이다. 작은 조개와 게를 눈으로 확인하면, 책에서 본 현상의 현실감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PART 6 — 하루 코스와 시간 배분 가이드

아래는 추천 동선과 시간 배분이다. 천천히 음미하듯 따라가면 하루가 풍성해진다.

1일차 (오후 출발형)

  • 오후 2시: 포항 도착 → 시내 간단 산책 혹은 로컬 카페 방문
  • 오후 3시 30분: 파도책방 방문 → 책 골라 창가 독서(1~1.5시간)
  • 오후 5시: 해안 드라이브, 포인트 포토 촬영
  • 저녁 7시: 포항 시내에서 해산물 저녁(대게/물회 등)
  • 숙박: 호미곶 인근 게스트하우스 혹은 포항 시내 호텔

2일차 (해맞이 + 읍천형)

  • 새벽 5시: 호미곶 해맞이 (상생의 손 포인트)
  • 오전 7시: 근처 카페에서 아침 식사와 따뜻한 음료
  • 오전 9시: 읍천항으로 이동(약 1시간)
  • 오전 10시: 읍천 골목 산책 및 해변책방 오리진 방문(독서·브런치)
  • 오후 12시: 항구 근처 맛집에서 점심 → 귀가

시간은 현지 교통 상황과 계절에 따라 유동적이니 넉넉히 잡는 것이 좋다.

PART 7 — 사진·촬영 팁: 빛과 분위기를 담는 법

  • 일출 촬영: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색감(골든아워)과 해가 막 떠오른 직후의 색감(블루아워)을 모두 활용하라. 연속 촬영(브래키팅)으로 노출값을 달리해 여러 장을 남기면 나중에 선택 폭이 넓다.
  • 책방 인테리어 촬영: 자연광을 최대한 사용하라. 통창이 있는 자리에서 렌즈를 약간 넓게 잡고, 책 표지의 텍스처와 창밖의 바다를 함께 담아보자.
  • 인물 사진: 방파제에서 실루엣을 활용해 촬영하면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된다. 역광을 활용하되, 얼굴은 음영으로 뭉치지 않도록 반사판이나 휴대 조명을 활용하면 좋다.

PART 8 — 먹거리·숙소·현지 정보(실용 팁)

  • 먹거리: 포항은 신선한 해산물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점심에는 가벼운 물회나 회덮밥을 추천하고, 저녁엔 대게나 조개찜으로 한 상 차리는 것도 좋다. 읍천 쪽은 멍게·성게 메뉴가 계절별로 인기다.
  • 숙소: 호미곶 인근의 게스트하우스나 바다 뷰 펜션은 해맞이 접근성이 좋아 인기가 높다. 성수기에는 조기에 예약할 것.
  • 교통: 대중교통이 불편한 구간이 있으니 자동차가 가장 편리하다.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해안 드라이브 루트를 미리 확인하자.
  • 방한·방풍: 겨울은 매우 춥고 바람이 세다. 특히 새벽 해맞이 시엔 체감온도가 훨씬 낮다. 방한용품은 철저히 챙겨야 한다.

PART 9 — 계절별 포인트: 언제 가야 더 좋을까?

  • 겨울(11~2월): 공기가 맑아 해맞이 사진이 선명하다. 다만 추위 대비는 필수.
  • 봄(3~5월): 벚꽃·유채꽃과 함께하는 드라이브가 아름답다. 날씨가 갑자기 변할 수 있어 얇은 겹옷 준비.
  • 여름(6~8월): 이른 새벽 해무(해안가 안개)가 풍경을 몽환적으로 만든다. 낮에는 더위를 피해 해변 활동 권장.
  • 가을(9~10월):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공기가 여행에 최적이다. 단풍 시즌과 겹치면 풍경이 한층 풍요롭다.

PART 10 — 여행 후의 기록: 노트에 남길 것들

여행을 떠날 때는 카메라뿐 아니라 반드시 작은 노트와 펜을 챙겨라. 아침의 빛, 책방에서 읽은 한 문장, 어시장 노점의 향기 같은 건 사진으로 남기기보다 글로 더 오래 살아남는다. 노트에 적어둔 문장은 시간이 흘러 다시 읽을 때 그날의 기분을 생생히 불러일으킨다.

바다와 책이 주는 단단한 위안

호미곶의 거대한 손과 읍천의 소박한 벽화, 파도책방의 조용한 창가와 오리진의 항구 기록물은 모두 같은 주제를 향해 있다. 그것은 ‘시간을 천천히 쓰는 법’이다. 새벽에 바다를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책방에서 조용히 머물며 그 하루를 곱씹는 경험은 현대인의 생활 리듬에 작은 균형을 불어넣는다.

다음 번 동해안 여행을 계획할 때는, 해맞이 후 곧바로 떠나지 말고 책 한 권과 함께 바닷가의 잔영을 오래 붙잡아 보시라. 그 한 권의 책이 당신의 기억을 더 오래도록 빚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