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반구대 암각화·대곡천 유역 감성 서점 탐방

mystory00610 2025. 8. 11. 18:10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 일대는 한국 선사시대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세계적으로도 귀한 유산인 반구대 암각화가 자리하고, 그 곁을 흐르는 대곡천은 사계절 내내 고요하고도 깊은 빛깔을 품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암각화 유적을 보러 왔다가 바로 돌아가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이 지역을 여행한다.
유적지와 강, 그리고 그 곁에 자리한 감성 독립서점들을 천천히 거니는 것이다.

대곡천을 따라 걷다 보면, 느리게 흘러가는 물줄기처럼 시간의 속도가 변한다. 그 속에서 책방 한 곳 한 곳이 나를 맞이한다. 오늘은 그 여정을 따라, 다섯 곳의 감성 서점을 소개하고, 이 일대를 하루 동안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도 함께 제안해 본다.

1. 대곡천변의 작은 집 — ‘강가책방’

반구대 암각화 주차장에서 차로 10분, 대곡천이 크게 굽어 흐르는 지점에 아담한 주택을 개조한 책방이 있다. 이름 그대로 ‘강가책방’.

이곳의 매력은 단연 창밖 풍경이다. 책방 창을 열면, 마당 너머로 강물이 바로 보인다.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배경음악이 되어, 책을 읽는 순간이 더 몰입된다. 주인장은 울산 출신의 전직 다큐멘터리 PD로,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지역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어 이 공간을 열었다고 한다.

서가에는 환경, 생태, 민속, 울산·경남 지역의 역사 관련 도서가 많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와 선사시대 생활을 다룬 전문서부터 그림책까지 골고루 갖춰져 있어, 여행객뿐 아니라 지역 학생들도 자주 찾는다.

여행 팁

  • 봄·가을에는 마당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된다.
  • 대곡천 물가까지 내려가는 작은 계단이 있어, 발을 담그며 독서 가능.
  • 주말에는 ‘지역 이야기 북토크’가 열려 주인장이 직접 해설해 준다.

2. 암각화 연구자가 만든 ‘바위와 책’

대곡천 유역에는 오랫동안 암각화를 연구한 학자들이 많다. ‘바위와 책’은 그 중 한 연구자가 은퇴 후 만든 서점이다. 이름부터 이 지역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았다.

외관은 그저 시골집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전시실과 서재가 있다. 전시실에는 주인장이 직접 찍은 암각화 사진, 발굴 당시의 기록, 모형 등이 놓여 있다. 서재에는 선사시대 고고학, 미술사, 인류학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책+현장 해설’ 프로그램이다. 미리 예약하면, 주인장이 직접 반구대 암각화까지 동행해 해설해 준다. 책방에서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서 실물을 보는 경험은 그 어떤 여행 가이드보다 생생하다.

여행 팁

  • 해설 프로그램은 소규모(최대 6명)로만 운영되니 예약 필수.
  • 책방 한쪽에 커피 머신과 작은 티테이블이 있어 휴식 가능.
  • 암각화 관람 후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지도 들러볼 만하다.

3. 숲속 다실 같은 ‘물돌이책방’

대곡천이 큰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지점, 울창한 참나무숲 안에 ‘물돌이책방’이 있다. 책방 건물은 원래 한옥이었다가 주인장이 직접 리모델링했다.

마루에 앉으면 강물이 ‘ㄷ’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책방은 차와 책을 함께 즐기는 다실형 서점이다. 메뉴판에는 녹차, 말차, 홍차, 그리고 지역에서 재배한 약차가 있다. 차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은 주인장이 직접 추천해 주는데, 주제는 주로 ‘쉼, 사색, 자연’이다.

이곳은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기에 좋은 공간이다. 전파가 약해 알림이 잘 오지 않는데, 덕분에 한 시간쯤 지나면 진짜로 마음이 고요해진다. 창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강물 위로 햇빛이 부서지는 풍경을 보며 책을 읽다 보면, 도시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잊힌다.

여행 팁

  • 예약제로 운영하므로 방문 전 인스타그램 DM 문의 필요.
  • 마루에서 강물 사진을 찍으면 SNS 감성샷 완성.
  • 여름철에는 모기 기피제 챙기는 것이 좋다.

넓은 가판대 위에 다양한 책들이 놓여 있고 누군가 책을 손으로 잡고 있다

4. ‘대곡천 생태서점’ — 물고기와 함께 읽는 공간

대곡천은 반구대 암각화뿐 아니라 다양한 민물고기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대곡천 생태서점’은 이곳 생태를 기록하고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 서점의 절반은 서가, 절반은 작은 수족관이다. 수족관에는 대곡천에서 서식하는 어종이 살아 움직인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책 속에서 본 물고기를 바로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좋다.

서가에는 생태·환경·동물 관련 도서가 많다. 특히 어린이용 도감, 그림책, 탐사 일지 등이 다양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주인장은 매주 한 번 ‘강변 생물 탐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참가자에게 직접 채집망과 루페를 빌려준다.

여행 팁

  • 생물 탐사 프로그램은 봄~가을에만 운영.
  • 수족관은 촬영 가능하지만, 플래시는 금지.
  • 어린이 손님을 위한 독서 놀이방이 별도로 있다.

5. 밤까지 머무는 ‘달빛강가책방’

대곡천 주변은 밤이 되면 정말 조용하다. ‘달빛강가책방’은 그런 밤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책방 중 하나다. 저녁 5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까지 운영한다.

창밖에는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강과 숲이 있다. 대신 마당에는 작은 화로와 조명이 있어,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이곳은 ‘밤 독서회’가 유명한데, 참가자들이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불멍을 하며 읽는 프로그램이다. 불꽃 소리, 강물 소리, 그리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시간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이 된다.

주인장은 “이곳에서는 책을 다 읽는 게 목표가 아니라, 책 속 한 문장을 오래 붙잡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말이 딱 맞다. 달빛 아래에서 읽은 한 문장은, 도시에 돌아가서도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여행 팁

  •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니 겉옷 필수.
  • 불멍 독서회는 주 1회, 사전 신청 필요.
  • 간단한 와인과 허브차 판매.

반구대 암각화·대곡천 1일 책방 여행 코스

  1. 오전 9시 — 반구대 암각화 관람
  2. 오전 10시 30분 — ‘바위와 책’에서 암각화 해설
  3. 정오 — 대곡리 근처 로컬 식당에서 점심(언양 불고기 추천)
  4. 오후 1시 — ‘강가책방’에서 강물 바라보며 독서
  5. 오후 3시 — ‘물돌이책방’에서 차와 함께 사색
  6. 오후 5시 — ‘대곡천 생태서점’에서 아이와 생물 탐사
  7. 저녁 7시 — ‘달빛강가책방’ 불멍 독서회

반구대 암각화와 대곡천 유역은 단순한 역사 유적지가 아니다.
이곳의 책방들은 선사시대의 시간과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강물처럼 느리게 흐르는 하루 속에서, 책은 더 깊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 책 속 문장은, 강물과 함께 오랫동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