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여행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래와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울산에도 조용히 책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조금 특별한 숙소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 여정은 ‘북스테이(Bookstay)’를 주제로 잡았다. 단순히 머물고 떠나는 숙박이 아니라, 책이 주인공이 되는 하룻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장생포의 책방부터, 영남알프스 자락에 자리한 숲속 서재까지, 울산과 울주 곳곳에서 ‘책과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첫 번째 여정 — 바다와 함께 숨 쉬는 장생포 북스테이
아침부터 장생포 바닷바람은 상쾌했다. 고래문화마을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바다를 마주 보고 서 있는 작은 2층 건물이 있다. 1층은 독립서점이자 북카페, 2층은 숙소로 꾸며진 전형적인 ‘북스테이’ 구조다. 문을 열자마자 코끝에 닿는 건 갓 내린 핸드드립 커피 향과 오래된 책의 종이 냄새였다.
주인장은 바다를 테마로 한 서적을 큐레이션해두었다. 고래 생태, 해양 문학, 바다 사진집, 그리고 여행 에세이까지. 창가 자리에서 책장을 넘기면, 멀리 바다 위로 고래 조형물이 보인다. 오후에는 바닷가 산책로를 걸어 진하해수욕장까지 다녀왔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 조그마한 스탠드 조명 아래에서 『바다와 나의 이야기』를 필사했다. 파도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니,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두 번째 여정 — 영남알프스 자락의 숲속 서재
다음 날은 울주 산쪽으로 향했다. 가지산 기슭에 자리한 한옥 개조형 북스테이였다. 시멘트 건물 대신 목재와 기와가 주는 온기, 그리고 서가에 가득한 자연·생태 관련 서적들이 인상적이었다. 창호 너머로 보이는 건 온통 초록의 숲,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책 읽는 시간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조용한 저녁 독서 시간’이었다. 오후 8시가 되면 숙소 안 조명이 한 톤 낮아지고, 모두가 각자 고른 책에 몰입한다. 스마트폰은 거실의 나무함에 넣어두고, 방 안에서는 책장 넘기는 소리와 벽시계 초침 소리만이 들린다. 주인장은 허브티와 직접 구운 쿠키를 건네주었고, 그 따뜻한 온기 덕에 책 속 세계로 한층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세 번째 여정 — 언양 마을 한옥 북스테이
북스테이는 단순히 책과만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때로는 지역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언양의 한 마을 안에 자리한 한옥 북스테이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낮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들러 차를 마시고, 저녁에는 숙박객끼리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는 형태다.
여기서는 울산·언양의 옛이야기를 담은 자료집과 민속서적, 그리고 어린이 그림책들이 많았다. 주인장이 말하길, 마을 아이들이 책을 보러 자주 놀러 온다고 한다. 저녁 식사 후, 숙소 마루에 모두 둘러앉아 각자 읽은 책을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덕분에 새로운 책을 많이 알게 되었다. ‘혼자만의 독서’와 ‘함께하는 독서’가 적절히 섞여 있어서 더 기억에 남았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북스테이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북스테이는 울산에서도 흔치 않다. 하지만 울주 두서면 쪽에 있는 한 숙소는 작은 마당과 함께 반려견 동반을 허용한다. 숙소 안에는 반려동물 관련 서적부터 여행에세이, 그리고 사진집이 다양하게 비치돼 있었다.
아침에는 반려견과 함께 숙소 뒷산을 오르고, 점심 무렵에는 마당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었다. 반려견이 옆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 나는 『개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읽었고, 주인장과 반려동물 여행 팁을 나누기도 했다. 동물과 함께하는 책방 숙소는 독서의 분위기가 훨씬 더 따뜻해진다는 걸 새삼 느꼈다.
차와 책이 함께하는 다도형 북스테이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다도와 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북스테이다. 울주 언양의 차밭 근처에 자리한 이 숙소는 오후마다 ‘차마카세’ 시간을 운영한다. 숙소 거실 한쪽에는 차 도구와 함께 ‘차와 인문학’, ‘동양 고전’, ‘명상’ 관련 서적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차를 우리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경험은 생각보다 깊다. 한 모금의 차가 목을 타고 내려가고, 문장 하나가 마음속에 남는 순간, 차와 책이 서로의 시간을 지켜주는 듯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방 안은 차향과 종이 냄새로 가득 찼다. 도시에서 느끼기 힘든 평온함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만의 울산·울주 북스테이 하루 코스
만약 누군가 울산·울주에서 북스테이를 계획한다면, 이렇게 하루를 짜보길 권한다.
아침에는 태화강 국가정원이나 장생포 바닷길을 가볍게 산책하며 하루의 시작을 열고, 오후에는 예약한 북스테이에 들어가 서가를 탐험한다. 저녁에는 근처 로컬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와 ‘책과 함께하는 밤’을 만끽한다. 다음 날 아침에는 짧은 산책과 독서로 마무리하고, 체크아웃 후 근처 독립서점 한두 곳을 들르면 여행의 결이 완성된다.
북스테이를 선택할 때 기억할 것들
북스테이는 방이 많지 않아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가을 단풍철이나 여름 휴가철에는 최소 한 달 전 예약이 안전하다. 또한 숙소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르니, 도서 대여 규정, 소음 정책, 취사 가능 여부, 반려동물 규정 등을 꼭 확인해야 한다. 책을 읽는 공간이니만큼, 서로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건 기본 예절이다.
책으로 마무리하는 여행
울산과 울주는 생각보다 북스테이가 잘 어울리는 지역이다. 바다와 산, 그리고 마을의 여유로운 속도가 책과 함께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건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치는 우리의 하루를 천천히, 그리고 깊게 만든다. 책 속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울산의 바다 냄새와 울주의 산바람이 한 페이지 안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깨달았다. 북스테이는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나를 조금 더 천천히 살게 만드는 ‘하룻밤의 수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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