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하동·구례 북카페형 서점 — 차와 책이 머무는 시간

mystory00610 2025. 8. 8. 08:12

책과 차 사이에서 느려지는 하루

빠르게 흐르는 일상 속에서, 속도를 늦추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창가에서 책을 펼친다.
하동과 구례는 그 ‘느림의 미학’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고장이다.

하동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도시로, 전통 다도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다.
구례는 깊은 산과 맑은 계곡이 있는 차의 산지이자, 차분한 기운이 감도는 책방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이 두 지역에는 차와 책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북카페형 서점이 늘고 있다.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고, 기록하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이곳에서는 독립서점의 큐레이션 감성과 카페의 편안함이 조화를 이룬다.
2025년 현재 실제 운영 중이며, 지역의 문화적 색깔이 진하게 묻어나는 북카페형 서점 5곳을 소개한다.

1. 하동 악양면 — 섬진강책방카페

섬진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강을 바로 마주한 작은 2층 건물 ‘섬진강책방카페’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층이 카페, 2층이 서점이자 작은 전시공간으로 운영된다.

카페 메뉴는 지역 특산물인 하동녹차 라떼, 유자차, 흑임자 라떼 등이 인기다.
차를 주문하면 대부분 전통 다기에 담겨 나오는데,
그 세심한 디테일 덕분에 마시는 순간부터 ‘여행의 기억’이 깊어진다.

서점 공간에는 주인의 취향이 담긴 문학·에세이·여행서적이 주를 이루고,
창가 자리에 앉으면 섬진강이 흐르는 모습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강 위에 비치는 풍경이 압권이다.

이곳에서는 매달 한 차례 소규모 독서모임이 열린다.
참가자들은 강가를 산책한 뒤 카페에 모여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여행자와 지역 주민이 섞여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펼쳐진다.

2. 하동 화개면 — 화개서가

전통찻집과 북카페의 경계를 오가는 화개서가는,
지리산 자락의 고즈넉한 마을 속에 자리해 있다.

내부는 대부분 목재 구조로,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넓게 마련돼 있다.
이곳의 장점은 지역 다원과의 협업이다.
차 메뉴는 모두 하동 현지에서 재배한 찻잎으로, 세작·우전·발효차 등 다양한 종류를 맛볼 수 있다.

서점 코너는 소규모지만, 큐레이션의 밀도가 높다.
자연, 농사, 생태, 차문화와 관련된 책들이 주를 이루며,
한켠에는 차마카세와 관련된 책과 도구가 함께 전시돼 있어
다도에 관심 있는 여행자들에게 좋은 영감을 준다.

특히 주인이 직접 차를 내리며 책 이야기를 곁들여 주는 시간이 인기다.
‘차를 마시는 법’에서 시작해 ‘책을 천천히 읽는 법’까지,
속도를 늦추는 삶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3. 구례 읍 — 책방 비비추

구례 읍 중심부에 있는 책방 비비추는 커피와 차, 그리고 예쁜 디저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북카페다.
이곳의 인테리어는 따뜻한 조명과 빈티지 가구가 어우러져, 마치 오래된 친구의 거실에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메뉴는 구례산 꿀을 활용한 허니블랙커피, 블루베리 요거트, 제철 과일차 등이 있으며,
책은 문학·시집·그림책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동화책 코너가 잘 갖춰져 있어, 아이 동반 손님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필사 노트 서비스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카페에서 제공하는 전용 노트에 필사해 둘 수 있다.
이 노트는 비치된 채로 다른 손님이 읽을 수 있어,
누군가 남긴 문장을 읽고 공감하는 ‘책을 매개로 한 익명 소통’이 가능하다.

소나무가 많고 푸른 잔디밭에 앉아 여성이 책을 읽고 있음

4. 구례 간전면 — 산들책방

구례 간전면의 한적한 시골길 끝에 자리한 산들책방은,
북카페이자 작은 숙박 공간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1층은 카페 겸 서점으로, 창문 너머로 지리산 능선이 보인다.
커피 외에도 직접 덖은 녹차, 발효차, 허브차를 주문할 수 있고,
책장은 주인의 여행 기록과 사진집, 그리고 환경·철학 서적이 주를 이룬다.

이곳에서는 주 1회 ‘산책 + 북토크’ 프로그램이 열린다.
오전에는 지리산 둘레길 일부를 걷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정이다.
특히 혼자 온 여행자에게도 부담이 없도록,
참가자 수를 4~5명 이하로 제한해 친밀한 분위기를 만든다.

북스테이 숙소는 2층에 있으며,
밤에는 창밖으로 별을 보며 독서를 이어갈 수 있다.
책과 자연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최적이다.

5. 구례 마산면 — 초록달 북카페

마산면의 조용한 마을에 있는 초록달 북카페는,
정원과 함께하는 독서 공간이 매력적인 곳이다.

입구부터 허브와 야생화가 가득해, 카페 안에서도 꽃향기가 스민다.
이곳의 메뉴는 계절 허브티, 수제 레몬청, 구례산 꿀차 등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활용한다.

책 코너는 예술·사진·수공예 분야가 강세다.
운영자는 매달 한 주제를 정해 책과 관련 전시를 함께 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름의 초록’이라는 주제에는 식물 도감, 정원 에세이,
그리고 작은 식물 액자가 전시·판매됐다.

초록달 북카페는 혼자 와도 편안한 좌석 배치가 특징이다.
창가 1인석, 마당이 보이는 마루 좌석,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둥근 테이블까지,
모든 자리가 ‘머물고 싶은 자리’로 완성돼 있다.

하동·구례 북카페가 주는 시간의 가치

하동과 구례의 북카페형 서점은 단순한 카페나 서점이 아니다.
그곳은 지역의 자연·문화·사람이 어우러지는 생활공간이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차 한 잔과 책 한 권을 통해,
지역의 속도와 호흡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

카페와 서점이 결합된 형태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과 음료를 즐기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채워주며,
무엇보다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준다.

하동의 녹차향, 구례의 맑은 물소리, 그리고 책 속의 언어가
서서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그 시간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깊은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