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왕도에서 만나는 책방 — 김해 역사문화지 근처 독립서점 탐방
유적과 책방, 시간과 문장이 겹쳐지는 도시 김해
김해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이곳은 고대 가야의 수도이자, 지금도 그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살아 있는 역사 도시’이다. 수로왕릉, 봉황대, 가야국왕릉, 대성동 고분박물관 등 도보 10~20분 거리 안에 유적이 이어지는 곳은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그런 김해에, 최근 몇 년 사이 작고 조용한 독립서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오래된 골목 안, 카페 거리 한편, 문화재 근처에 숨어 있던 공간들이 이제는 새로운 감성의 책방으로 자리 잡았다.
이 독립서점들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지역의 시간, 기억, 목소리를 담아내는 곳이며, 관광객에게는 조용한 쉼표가 되고, 지역민에게는 새로운 영감의 창이 된다.
이 글에서는 김해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독립서점들을 중심으로, 시간과 문장이 교차하는 감성 공간을 소개해본다.
1. 기록책방 담: 수로왕릉 앞, 조용한 필사의 공간
특징: 독립출판물 전문, 필사공간, 김해 로컬 작가 ZINE 상시 전시
『기록책방 담:』은 수로왕릉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조용한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겉에서 보기엔 작은 소매점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문장과 필사의 세계가 펼쳐진다.
운영자는 김해 토박이 출신의 30대 청년으로, 글쓰기와 기록을 좋아해 이 책방을 직접 꾸렸다.
책방의 핵심 콘셉트는 ‘기록’이다. 이곳에는 일반 서적보다는 독립출판 에세이, 로컬 ZINE, 자비 출판 시집이 중심을 이룬다.
특히 김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만든 소규모 출판물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손님은 그 책들을 읽고 직접 필사도 해볼 수 있다.
책방 한쪽에는 작은 필사 테이블이 있어 누구나 종이와 펜을 꺼내어 인상 깊은 문장을 따라 적을 수 있다.
이 필사지는 모아져 월말에 ‘문장 기록 전시’로 다시 꾸며진다.
최근에는 《가야를 걷는 여자》라는 제목의 로컬 작가 에세이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가야 유적지를 혼자 걸으며 느낀 감정과 생각을 담은 이 책은 책방 주인의 직접 추천으로 꾸준한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기록책방 담:』은 말보다 문장이 먼저 말을 거는 공간이다.
김해의 고요한 역사와 함께 머무는 문장을 만나고 싶다면, 이곳을 조용히 찾아가보자.
2. 가야의 오후: 대성동 고분박물관 옆, 문화예술 복합 책방
특징: 북카페형 독립서점, 전시 + 책방 복합공간, 지역 아트북 큐레이션
'가야의 오후'는 이름처럼 ‘느긋하고도 깊은 시간’을 상징하는 책방이다.
대성동 고분박물관을 둘러본 뒤,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은 독립서점이자 아트북 갤러리, 북카페가 함께 공존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가장 큰 특징은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해 전시 큐레이션을 함께 진행한다는 점이다.
가야를 주제로 한 드로잉북, 역사 기반 픽션, 고대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사진집 등이 정기적으로 소개된다.
책방 한켠에는 직접 만든 북마크, 일러스트 엽서, 도자기 책갈피 등의 굿즈 코너도 마련되어 있어, 여행객들이 특별한 기념품을 가져갈 수 있다.
커피 역시 지역 로스터리 브랜드와 협업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조용한 창가 좌석에서 고분 유적지를 바라보며 책을 읽는 특별한 경험도 가능하다.
이 책방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역사와 현대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을 세심하게 연결한다.
‘가야’라는 이름이 낡은 유적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문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공간은, 김해 여행에서 놓치기 아까운 책방이다.
3. 소리책방: 봉황동 유적길을 따라 만나는 작은 감성서점
특징: 음악 + 책, 시집 중심 큐레이션, 문장 낭독회 운영
'소리책방' 은 김해 봉황동 유적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감성 독립서점이다.
가장 큰 특징은 문학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북카페형 서점이라는 점이다.
내부에는 작은 턴테이블과 LP가 설치되어 있으며, 책방을 방문하는 이들은 자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책을 고를 수 있다.
운영자는 20대 후반의 문학 전공자로, 감성적인 시집과 문학서, 짧은 산문집을 위주로 큐레이션한다.
이곳에서 인기 있는 책은 다음과 같다:
- 《밤을 지나는 글》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 《김해의 기억을 걷다》 (지역 산문 ZINE)
매달 두 번째 금요일에는 ‘소리 낭독회’라는 이름의 문장 공유 모임도 열린다.
시와 짧은 문장을 서로 낭독하고, 그에 대해 감상을 나누는 조용한 모임이다.
가야의 시간, 그리고 잊히지 않는 문장을 테마로,
문학적인 감수성과 지역의 시간성이 잘 어우러지는 이 책방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 속에 머무는 기분’을 주는 공간이다.
4. 지금, 책방: 김해시립도서관 옆, 청년 운영 북 큐레이션 서점
특징: 청년 창업형 서점, 매월 테마형 문학 큐레이션, 1인 독서공간
『지금, 책방』은 김해시립도서관과 인접해 위치한 소규모 독립서점으로,
도서관과는 또 다른 감성과 선택을 제안하는 공간이다.
20대 청년이 직접 운영하며, “지금의 기분으로 고른 책”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감성 큐레이션 서점이다.
매월 한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책을 선별한다.
예를 들어, 8월에는 ‘여름의 안쪽’, 9월에는 ‘늦은 시작’ 같은 주제로
5~7권 정도의 도서를 추천하고, 각 책에는 손글씨로 작성된 미니 리뷰가 함께 붙는다.
이곳의 장점은 누구나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1인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음료는 없지만, 바깥 커피를 반입할 수 있어 이용자 편의도 좋다.
책방 내부는 최대 6명 정도만 수용할 수 있어, 정말 조용하게 책과 머무르고 싶은 이들에게 최적의 장소다.
운영자는 말한다.
“역사도 좋지만, 지금의 나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나를 위한 책방’을 만들었어요.”
유적을 따라 걷다가, 문장을 만나게 되는 도시
김해는 유서 깊은 도시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
과거를 걷는 여행자가, 문장을 읽으며 오늘의 나를 발견하는 순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김해의 역사문화지 주변 독립서점들이다.
책방은 이제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시간이 머무는 공간이자, 감정이 조용히 말 거는 장소다.
가야의 시간을 지나, 문장과 마주할 수 있는 도시.
김해는 그렇게, 여행과 독서가 어우러지는 곳이 되어간다.